2019.07.01
축구는 전 세계인들이 가장 열광하는 스포츠다. 축구가 지구촌을 들썩이게 하는 여러 매력 중 으뜸은 단순함이다. 과정에 대한 보상은 없고 골을 넣어야만 이기는 경기다.
대구는 축구계의 속설을 입증하듯 경기를 지배하고 승부에 졌다. 골대를 두 번씩이나 맞춘 불운으로 위안 삼을 경기였다.
양 팀은 주포 격인 에드가와 페시치를 부상으로 결장시킨 라인업을 꾸렸다.
안드레 감독은 팔공 산성 3인방인 김우석, 홍정운, 정태욱과 믿을 맨 조현우에게 후방을 맡기고 주중 R리그 포항전에서 시험 가동한 류재문과 한희훈에게 중원의 들논 경작을 맡겼다.
황순민을 좌측 윙백에 포진시키고 리그 초반 전력을 다한 후 회복 시간이 길었던 김준엽을 우측 윙백에 배치했다. 정승원을 전방에 전진 배치하며 플랜 B를 가동했다.
FC서울 최용수 감독은 박주영과 박동진에게 골 사냥을 맡기고 고요한과 알리바예프에게 중원 장악을 요구했다.
경기 시작 직전 사기 진작을 위해 장내 아나운서가 선수 소개를 시작했다. 선발진의 소개를 마친 후 소년 급제하고 돌아온 '잘난 자식' 고재현을 홈팬들께 인사시켰다.
원정 불안감이 가득했던 FC서울 응원단은 단 몇 초의 여유도 갖지 못했다. 깍쟁이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고재현의 이름 위에 서울 선수 이름을 연호하며 장내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경기가 시작되었다. 6분 만에 김대원이 이강인 못지않는 패스를 보여 줬다. 직후에는 김대원의 가슴과 세징야의 발이 합작으로 첫 포문을 열었다.
전반 초반 세징야, 정승원, 김대원의 압박과 슛이 서울 문전을 쉼없이 유린했다. 코앞에서 벌어진 수세에 기세 등등했던 서울의 응원단은 호흡이 거칠어졌다. 대구의 공세와 심판의 호각소리에 극도로 예민해진 원정 응원단은 '정신 차려 심판'을 연호하며 '남의 집' 안방에서 주인 노릇을 하려고 했다.
백 년 전에 없어진 신분 제도를 보는듯한 느낌에 손님이었지만 고운 시선을 줄 수 없었다. 그들은 편향된 서울 중심 문화를 축구판에서도 적용하려 했다. 철없는 부잣집 도령 마냥 예의가 없었고 염치도 부족했다.
전반 중반 김대원의 돌파 후 슛과 정승원, 세징야, 류재문의 연이은 슛이 해일처럼 골문을 위협했다. 봇물처럼 터진 슛에 놀란 서울 응원단의 함성은 옹알이 수준으로 잦아들었다.
찬스 뒤에 위기라는 속설의 희생양이 우리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싫었다. 하지만 장미 속에 숨겨진 가시를 미쳐 보지 못했다. 33분 조현우의 빠른 빌드업이 시작되었다. 전력 질주로 몸싸움을 이겨낸 세징야의 패스가 정승원에게 연결되었다. 그의 슛이 수비 몸 맞고 리바운드되며 역습의 단초가 되었다.
결정적 찬스라고 생각한 선수들이 공격에 힘을 쏟았던 순간이라 이중 방어벽이 일시적으로 흩트려진 상황이었다. 알리바예프가 문전에서 중거리 슛을 날렸다. 조현우의 손끝에 걸릴 방향이었지만 홍정운의 등을 스친 공은 거미손의 예측 각도를 비켜갔다.
40분경 정현철에게 당한 추가 실점은 조급함이 빚어낸 실수였다. 병살을 염두에 둔 유격수가 누상의 주자를 쳐다보다 공을 놓친 격이었다. 상대의 코너킥 방어보다 이어질 역습을 염두에 둔 선수들의 몸 중심은 상대 진영으로 향하고 있었다. 흐르는 볼을 향해 달려드는 2선 공격수까지 커버할 여유가 없었다.
후반이 시작되었다. 진다고는 생각하기 싫었지만 이기는 것도 쉽지 않다는 느낌이 왔다. 공세는 우리 몫이었지만 움츠렸다 뿜어내는 서울의 내공이 만만치 않음을 전반에 느낀 터라 부적처럼 여기던 홈 무패 기록에 대한 미련을 접을 수도 있다는 우려를 버릴 수 없었다.
하지만 이른 시간에 추격골이 터졌다. 52분 세징야의 어시스트를 황순민이 골로 연결하며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대구는 동점골을 위해 압도적인 화력으로 공세를 퍼부었지만 서울은 선수 교체를 통해 수비를 강화하고 적당한 쉼표로 굳히기에 돌입했다.
입으로는 한국 축구 발전을 외치지만 눈 앞에 아른거리는 달콤한 승점 3점의 유혹을 떨치 수 없는 서울은 지능적 지연 플레이를 펼치며 홈팬들의 애간장을 태웠다.
축구팬들은 끝까지 인파이터를 보고 싶었지만 테헤란로를 통해 이란과 친분이 두터운 서울은 중동의 침대 축구를 구사하며 지능적 클린치 작전을 펼쳤다. 대구는 후반 추가 시간에 터진 세징야의 골마저 오프사이드로 취소되는 불운을 당했다.
대구는 특설반 진입을 목표로 최선을 다했지만 치마바람을 앞세운 서울의 극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그들의 중간고사 1등 등극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끝난 것은 아니다. 막다른 골목에서 부딪힐 3차전이 남아있다.
안드레 감독은 이를 갈며 위장약을 먹을 것이다. 6번째 매진을 기록한 홈 팬들 또한 8월 2일, 24라운드 복수혈전이 완성되는 날까지 침실 냉방을 끄고 쓸개주를 먹으며 기다릴 준비가 되어 있다.